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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2일은 인텔이 ‘펜티엄’ 브랜드를 만든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인텔이 첫 마이크로프로세서인 4004를 만든지 올해로 42년 됐으니, 인텔의 절반은 펜티엄과 함께한 셈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급격히 불어온 IT 열풍의 중심에는 인텔 펜티엄이 있었다. PC 하면 펜티엄이 가장 먼저 입에 오르내렸다. 비록 지금은 코어 프로세서에 그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펜티엄은 인텔과 PC시장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하나씩 만들어 왔다.

intel_inside▲인텔 인사이드 “인텔이 타고 있어요”

1993년 : 486 다음은 펜티엄. “586은?”

펜티엄은 인텔이 본격적으로 브랜드와 마케팅에 눈을 뜨게 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칩의 이름을 8088, 80286, 80386등으로 다소 어렵게 가져간 바 있다. 프로세서라는 것이 개인이 선택하거나 구입하기는 어렵고 PC 제조사들에게 주로 납품되던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PC를 구입하는 이들에게는 386SX, 486DX 같은 이름이 더 익숙했다. PC의 세대가 바뀌는 것도 286, 386, 486 같은 숫자로 구분했다. 다음 프로세서는 586이라고 부를 차례였다. 하지만 인텔이 주도하던 x86 프로세서 시장에 호환칩들의 역할과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PC가 많이 팔리면서 IBM이 AMD와 사이릭스같은 회사들을 통해 인텔의 칩을 대신 만들게 했던 게 직접적인 기술 이전이 되어버렸다. 이들 회사는 직접 설계 기술을 익히며 인텔과 거의 똑같은 성능의 칩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486dx4
▲인텔의 486DX4 프로세서. AMD나 사이릭스도 거의 똑같은 걸 만들어냈다.

특히 486에 접어들며 인텔은 이름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80486 같은 이름은 상표로 등록되지 않았다. 인텔 입장에서는 ‘인텔’이 중요할진데 사람들은 486을 찾는다. 인텔의 i486이름은 고유하게 지켜지지 못했다. 이름은 인텔도, AMD도, 사이릭스도 생소하다보니 인텔은 486DX2 시대에 접어들면서 아예 486을 빼고 ‘Intel DX4’ 식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결국 인텔은 586 대신 5라는 숫자를 이용한 이름 ‘펜티엄’을 달고 5세대 프로세서를 출시했다. 또한 이 아키텍처를 80586이 아니라 P5라고 불렀다. 인텔은 직접 펜티엄PC를 알리기에 나섰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로고를 PC에 붙임으로써 프로세서가 PC 판매를 이끌고 가는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펜티엄이라는 이름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Intel_Pentium_P5
▲60MHz로 작동했던 첫 펜티엄 프로세서. 경쟁사들과 다른 길을 걷는 시작이다.

PC의 보급과 함께 프로세서 시장이 커지자 AMD도 비슷한 판단을 내린다. AMD의 차세대 칩은 ‘K5′라고 이름 붙였다. 사이릭스는 6×86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만 펜티엄은 성능과 브랜드 면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 이에 자극받아 AMD도 한 세대를 더 지난 뒤 ‘애슬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1996년 : MMX로 명령어도 발전

1993년 초기 펜티엄 프로세서는 60MHz와 66MHz 두 가지 제품으로 나왔다. 요즘 스마트폰도 1500MHz씩 가뿐히 만들어내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면 엄청 빠른 컴퓨터였다. 놀라운 것은 이전 세대인 486DX4가 100MHz의 속도를 내도 60MH의 펜티엄이 처리 속도는 더 빨랐다. 펜티엄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작동속도가 6MHz로 갈라지는 이유는 인텔이 486DX2부터 도입한 CPU 내부와 외부의 클럭 작동 속도를 배수로 조정하는 기술과 연결된다. CPU는 빨라져도 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 등 칩 외부 장치들의 속도는 똑같아야 한다. 동기화가 이뤄져야 한다. CPU의 속도를 끌어올리되 시스템과 동기화가 완벽하게 이뤄지기 위해서 CPU에 배수를 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60MHz로 작동하는 펜티엄 프로세서에 배수를 조절하면 90MHz, 120MHz, 150MHz 등의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게 된다. 66MHz 제품은 100, 133, 166MHz의 프로세서로 발전해 갔다.

Intel_Pentium_MMX

▲펜티엄MMX는 명령어 세트로 성능을 끌어올렸다.

사실 두 가지는 같은 공정으로 만들어내지만 반도체의 수율에 따라 더 높은 속도로 작동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더 높은 클럭을 매겨 판매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는 것이 오버클럭킹이고 한때 용산에서는 이를 악용해 싼 프로세서를 강제로 오버클럭하고 제품의 이름까지 바꾼 ‘리마킹 프로세서’가 유통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버스와 배수 방식은 프로세서 속도가 이전과 다르게 엄청나게 올라가는 시대를 연다. 인텔은 여기에 MMX라는 명령어 세트를 넣는다. 이름은 ‘멀티미디어 가속’인데, 실제로는 자주 쓰이는 부동소수점 연산 처리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코드다. 명령어 하나로 동시에 여러 개의 연산을 처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MMX로 기존 펜티엄과 거의 비슷한 실리콘 구조를 갖지만 칩에 명령어 세트를 하나 더하는 것으로 성능이 높아지는 시대가 열린다. (정확하게는 펜티엄은 작동 속도가 올라가면서 P54, P54C, P55C 등의 설계로 초기 P5 설계를 조금씩 개선해 갔지만 기본 설계는 큰 차이가 없다.) MMX는 멀티미디어 명령 뿐 아니라 게임에도 차별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세가의 ‘버추얼온’ 같은 게임이 MMX 전용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경쟁사인 AMD도 ‘3DNow!’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명령어 세트를 넣었다. 펜티엄2 이후부터는 두 회사 모두 SSE(Streaming SIMD Extensions)라는 이름의 기술로 발전시켜 왔다. 현재 인텔은 코어프로세서에 SSE4를 적용했고 AMD는 SSE5를 쓰고 있다.

돌아보면 펜티엄MMX 166이 1996년에 후반에 나왔으니, 처음 펜티엄 60 프로세서가 등장해 여기까지 발전하는 데 약 3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요즘 발전 속도와 비교하면 100MHz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2배 이상의 성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1997년 : 펜티엄2 32비트 시대의 개막, 그리고 경쟁자

펜티엄 프로세서는 이후 계속 작동 속도를 끌어올리며 300MHz까지 빨라졌다. 하지만 인텔은 그 사이 다시 세대 교체를 준비해 왔다. 윈도우95와 함께 PC의 구조가 32비트로 바뀌는 것을 준비했다. 1995년 발표한 ‘펜티엄 프로’다. 온전한 32비트 연산과 또 다른 성능 개선을 이끌기 위한 칩이었다. 이는 인텔이 2개의 큼직한 연구개발센터를 경쟁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펜티엄 프로의 성능은 좋았지만 윈도우95와 그 안에서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들은 여전히 16비트로 작동했기 때문에 일반 PC에서는 오히려 성능이 떨어지거나 작동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서버나 워크스테이션 등에 특화된 윈도우NT4.0에서야 제 성능을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일반에 인기는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IT 붐이 일며 PC시장은 급변기를 맞는다. 32비트는 아주 빠르게 대중화됐다. 인텔은 이 펜티엄 프로를 펜티엄의 후속작으로 준비한다. 이게 바로 펜티엄2다. 이 프로세서는 그동안의 칩 형태가 아니라 게임팩같은 디자인을 했다. 이때부터 CPU의 2차 캐시메모리를 메인보드에서 프로세서 안쪽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시작된다. 당시 실리콘 공정은 지금보다 거의 10배 가량 두꺼웠기 때문에 모든 것을 칩 하나에 통합하기는 어려웠다.

펜티엄2는 큰 성공을 이룬다. 조립PC 시장의 붐도 일어났다. 펜티엄MMX부터 시작된 개발 코드명과 로드맵에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카트마이’, ‘코퍼마인’ 등의 코드명이 이름을 대신하는 유행도 생겨났다. 작동 속도 외에 캐시 메모리 등으로 차별을 둔 저가형 프로세서 ‘셀러론’도 펜티엄2와 함께 나온다. 인텔은 프로세서 이름으로 시장을 휘어잡았다. 이즈음 인텔은 메인보드 칩까지 함께 묶어 팔며 PC의 규격화도 이뤘다. 사람들은 어느 제조사에서 만든 컴퓨터냐는 것보다 인텔의 어떤 프로세서와 메인보드가 들어간 PC냐는 것이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됐다.

pentium_II
▲펜티엄2는 게임팩처럼 생겼다. L2캐시메모리 때문이다. 초기 펜티엄3도 같은 모양이었지만 반도체 기술이 좋아지며 다시 소켓 형태로 바뀐다.

프로세서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졌고 AMD가 엄청난 성능의 애슬론 프로세서를 내놓으면서 CPU 중심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활짝 꽃을 피운다. 인텔은 1999년 펜티엄2의 성능을 개선한 펜티엄3를 내놓는다. PC시장의 표준을 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던 인텔은 펜티엄3와 함께 램버스의 RD램을 표준으로 꺼내놓고 AMD의 추격에서 달아나려고 했는데, RD램의 작동 속도가 제대로 동기화되지 않는 바람에 인텔은 망신을 당하고 소비자들에게 새 메인보드와 SD램을 나눠주었던 일도 있었다.

그만큼 AMD의 추격은 무서웠다. 당시 관건은 클럭 끌어올리기였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메가헤르츠가 높으면 성능도 높다’는 원칙에만 따르면 PC 구입에 문제가 없던 시기였다. 인텔과 AMD는 자고 일어나면 몇십MHz 더 빨라진 펜티엄3와 애슬론을 내놨다. 2000년, 결국 AMD가 애슬론 프로세서로 1GHz 벽을 먼저 뚫었다. 펜티엄3도 며칠 뒤 뒤따라 1GHz 제품을 내놨지만 꺾인 자존심은 돌릴 수 없었다.

2000년 : 펜티엄4, 클럭 전쟁이 빚어낸 인텔의 암흑기

그래서 인텔은 또 다른 카드를 꺼낸다. 펜티엄4다. 펜티엄3가 펜티엄2와 크게 다르지 않은 P6 아키텍처에 기반하고 있는 것과 달리, 펜티엄4는 넷버스트라는 전혀 새로운 아키텍처로 무장한다. 이 아키텍처는 클럭당 효율은 떨어지지만 작동 속도를 한도 끝도 없이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였다. 이제껏 펜티엄부터 펜티엄3까지 시스템 버스 속도가 60MHz에서 200MHz까지 올라온 것과 달리 펜티엄4는 400MHz부터 800MHz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클럭을 4배로 끌어올리는 쿼드펌핑 기술 덕분이었다. 파이프라인 길이도 늘렸다. 파이프라인이 길어지면 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작동 속도를 끌어올리기 유리하다. 초기 펜티엄4는 20개 단계 수준이었지만 31개 단계까지 늘려 성능을 끌어올린다.

초기 펜티엄4는 1.4GHz에서 시작했지만 2GHz를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3GHz도 손쉽게 돌파했다. 오버클럭커들은 액화질소 등을 이용해 5~6GHz까지 끌어올렸고 인텔도 공정이 향상되면 10GHz도 도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pentiumee_processor_back ▲펜티엄4는 작동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세대 교체를 수차례 했지만 결국 열과 전력에 가로막혀 4GHz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AMD는 작동 속도는 작동 속도대로 끌어올리고 클럭당 효율도 좋은 애슬론을 계속 만들어 왔다. 애슬론은 작동 속도는 낮아도 펜티엄4보다 성능이 더 좋았다. 거의 3분의 2 정도의 클럭으로 비슷한 성능을 낸다는 뜻으로 ‘애슬론XP 3200+’ 같은 이름을 지었다. 이 프로세서는 2.2GHz로 작동했지만 펜티엄4 3.2GHz 이상의 성능을 낸다는 의미였다.

쫒기던 인텔은 성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온갖 실리콘 기술을 더했다. 그 절정은 ‘프레스콧’으로 불리는 3세대 펜티엄4다. 작동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 단계를 31단계까지 늘렸는데 이 때문에 엄청난 전기를 끌어다 썼고, 열도 어마어마했다. 성능도 신통치 않았다. 너무 뜨거워서 이 프로세서는 ‘프레스핫(hot)’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PC를 몇 시간 켜 두면 방이 후끈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때 인텔은 하나의 코어가 2개처럼 작동하는 하이퍼스레딩 기술도 공개했다. 이는 지금 코어 프로세서에도 들어가는 것으로 시스템 성능을 놀지 않고 끝까지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AMD는 곧 진짜 2개 코어가 들어간 듀얼코어 프로세서 애슬론X2를 발표한다. 이게 2005년의 일이다. AMD의 절정기이기도 하다.

인텔은 급히 펜티엄4를 2개 붙인 ‘펜티엄D’를 내놨다. 펜티엄 듀얼코어를 줄인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실리콘 다이를 2개 붙여서 ‘본드 듀얼코어’라는 놀림만 샀다. 2개 코어 사이에 병렬 처리하는 과정에서 병목 현상이 생겼고 여전히 발열이 심했기 때문이다. 듀얼코어라고 해서 성능이 2배로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2005년 : 펜티엄의 쓸쓸한 퇴장

인텔은 급히 방향을 바꾼다. 펜티엄3로 되돌아가는 결정을 내렸다. 코어 프로세서가 그것이다. 인텔은 그동안 데스크톱에는 펜티엄4와 넷버스트 아키텍처를 써 왔지만 노트북에는 여전히 펜티엄3와 P6 아키텍처를 개선한 프로세서를 써 왔다. 전기를 아껴써야 하기 때문이다.

인텔은 여기에서 깨닫는다. 전력소비, 발열에 대한 고민을 모바일로 푸는 것이다. 곧 인텔은 모바일용으로 ‘코어 듀오’라는 이름의 프로세서를 내놓았다. 그 사이 P6 기반 아키텍처는 꾸준히 성능이 개선됐고 새 반도체 공정으로 작동 속도도 높아졌다. 반응은 좋을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코어2 듀오라는 이름으로 개선된 칩을 내놓고 데스크톱, 노트북 프로세서 브랜드를 통합한다.

인텔로서도 펜티엄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펜티엄이라는 이름은 입에는 잘 붙었지만 더 이상 영광스러운 이름이 아니었다. 펜티엄은 곧 높은 전력 소비, 뜨거운 프로세서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10년 이상 써 온, 인텔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 한 펜티엄이라는 이름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intel_pentium_g

인텔이 브랜드를 더 단순화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코어i3, i5, i7 등으로 이름을 짓는 동안, 펜티엄은 코어 프로세서의 하위모델로 자리잡는다. 이름 뒤에 붙던 숫자들도 모두 뗐다. 그냥 ‘펜티엄’이다. 코어 프로세서와 똑같은 설계를 하고 있지만 캐시 메모리에 제한을 두거나 작동 속도를 낮추는 등으로 하위 모델 역할을 한다. 요즘 저가 시장에서 인기있는 펜티엄 G2020 같은 프로세서가 코어 i3 프로세서 바로 아래를 맡아주는 듀얼코어 프로세서다. 셀러론 신세가 됐다고 생각하면 쉽다.

물론 셀러론이 아직 펜티엄 아래에 있지만, 펜티엄이나 셀러론이나 별 차이 없는 뒷방 신세가 됐다. 화려했고 숨차게 달려온 펜티엄은 이렇게 20번째 생일을 쓸쓸하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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