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성진국으로 만든 요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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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인 성문화와 AV 산업 때문에 일본을 성진국이라고 부르는데
현대 뿐만 아니라 과거 일본에는 귀를 의심할 정도로 비윤리적인
성문화들이 있어 지금의 개방적인 일본 성문화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1000년 전 일본에서는 여자가 남자와 결혼할 것인가 말것인가 결정하였으며,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남녀는 자신의 집에서 각자 따로 살아가면서
성관계를 할 때는 부인의 집에 남편이 들어갔다 나오는 형태였다고 한다.
결혼의 婚,嫁,結婚의 글자를 당시에는 요바우(よばふ) 또는 요바이(よばひ)라고 불렀으며,
'부르다.'는 뜻의 동사 요부(呼ぶ)의 재활용형인 つまどい,つままぎ에서 비롯되었는데
남자가 구혼하기 위해서 여자의 침소에 들어오는 옛 혼인풍습의 행위를 의미했다.
그러다 밤에 성교를 목적으로 모르는 사람의 침실에 침입하는 것으로
요바이의 의미가 바뀌었고 요바이의 방식도 두 가지로 나누어졌는데
하나는 여자라면 누구나 그 강간의 대상이 되었던 난폭한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여성과 과부, 하녀나 유모만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남자들이 한밤중에 여자의 침실에 몰래 들어갔다가 날이 밝기 전에 돌아왔는데
여기에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어 '이웃집 여자는 범할 수 없다.' 등의 조건을
마을에서 회의로 정해서 그 내용을 마을 어귀에 세워 두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규칙을 무시하고 다른 마을의 남자가 요바이를 하러 동네에 들어오면
마을의 남자들이 무력으로 막아섰으며, 반죽음을 당할 정도로 때리기도 하였다.
얼핏 들으면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한 강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요바이는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동의의 이사를 얻은 후 이루어진 경우도 많고
상대는 불특정다수였다든가, 혹은 이미 파트너 관계가 성립되었다든가하는
갖가지 상황이 혼재되어 있어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누구나 요바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젊은 청년은 '청년조'
여자들은 '소녀조'에 가입해야만 요바이를 할 수 있는 동네도 있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조직의 통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동네에서는
남자들이 제비뽑기로 상대를 정하고 밤에 지정된 여자를 찾아갔는데
여자의 외모가 너무도 못생겨서 차마 몸과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든가
여자가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조직에서 의논해서
상대를 바꾸어 주는 일도 있었으므로, 매우 체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체계로 인해 젊은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기 위해
평소에 마을에서의 평판을 중요하게 관리하는 긍정적 면도 있었다.
또한 요바이는 시대적, 지리적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하게 변화되어
일부 지역에서는 손님이 마을에 찾아오면 여자를 내어주는 곳도 있었고
또 일부 지역에서는 마치 에스키모의 풍습처럼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자신의 아내를 밤에 빌려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습이었던 곳도 있었는데
손님이 아내를 거부하면 수치스럽게 여겨 아내를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농촌 뿐만 아니라 사창가가 많은 도시에도 요바이는 존재했는데
에도시대 중기에는 축제를 빌미로 야외에서 많은 남녀들이 혼음을 했다.
이것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는데 불륜이나 방탕함도 비난받지 않았고
젊은 여성은 신분이 높은 남성들과 만나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기회로
자신의 성적 매력으로 신분 상승을 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일본의 성문화를 만든 요바이는 놀랍게도 1950년까지 행해졌으며
메이지 정부가 없애려 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에 이르러서야 서양 사상이 들어오고 요바이가 배덕한 일로 여겨져
부모나 상대의 허락 없이 침입하는 불순한 행위가 중단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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